사회복지학/사회복지와 인권

인권의역사3-사회복지와 인권(2)

raynewfold 2024. 8. 31. 01:13

1. 분배냐 소유냐

 

 

소유에 대해서는 굉장히 다른 의견들을 이제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했었는데 자유주의를 주장하는 부르주의자들은 소유가 신성불가치만 자연권이고 권리라는 것을 시민 인권과 시민권을 선언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에 대해 반론을 제기한 사람들이 있었는데요. 이 로베스 피에르는 소유라는 것은 자연권이 아닌 사회적 제도이다 라고 주장을 합니다. 당시 나중에 로베스 피에르가 정권을 잡게 되면서 공포 정치를 폈지만 이 사상은 사회권에 대한 관점들을 갖고 있었습니다. 로베스 피에르가 재산권을 아래와 같이 주장합니다.

 

신성 불가치만 자연권이 아니라 사회적 제도다 그래서 생산 수단을 사유하는 조건이라면 분배가 아무 생물이 균등하게 이루어진다고 해도 불평등이 생기는 것은 필연적이다. 생산 수단이 사유화된 사회를 자본주의 사회라고 한다. 자본주의 사회는 아무리 균등하게 분배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불평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봤고 그래서 인권과 시민권의 권리 선언이 공허한 의미일 수 있다고 로베스 피에르는 주장한다. 그래서 권리가 공허한 것이 되지 않고 평등이 환상에 그치지 않으려면 소유를 자연권에서 추방해서 사회적 관계의 소유권 남용을 금지해야 한다. 그래서 신성 불가침의 자연권이 아니라 이 사회가 그것을 조정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나중에 1990년대 중반에 국가가 시장을 조절하는 기능으로서 소유를 사회적 관계에서 조정하는 기능을 얘기하는 이론적인 뒷받침에 이 로베스 피에르의 사상 있다.

소유가 단순한 사회적 제도인 이상 모든것은 인민의 의사를 자유롭고 엄숙하게 표명하는 법률에 의해 그 한계를 정해야 한다. 그래서 소유의 자유에도 한계를 정해놓고, 재산권이 우리 동료인 인간적인 안전이나 그 자유 생존 재산을 해칠 수 없도록 해야 된다. 그렇게 하면서 누진세를 이 당시 최초로 이제 주장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런 관점을 가진 그라쿠스 바뵈프라는 사회주의자가 있었는데, 이 말을 마르크스 이전의 사회주의자라고 부르는 사람입니다.

불평등한 분배는 예속과 불행의 원천이라 말한다. 원래 사회의 목적은 자연 상태에서 강한 자들, 사악한 자들에게 공격당하는 것을 지키기 위함이다. 평등을 지키기 위함이다. 그래서 사회에는 양육강식이 아니라 약자들 그리고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 복지를 증대하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사실은 이제 최후 진술을 하고 단두대에서 처형을 당햇습니다.

바베프가 진술했던 최후 진술에도 당시 브로조아자들은 인권과 시민권의 선언을 통해서 자신의 권리를 얻었지만 거기에서 배제됐던 쌍킬로트라는 노동자 계급들이 자유롭지 못할 그런 사회에 대한 진술들을 담고 있습니다.

 

모든 선의 근원은 자유를 유산으로 남겨주려고 그렇게 애를 썼지만 오직 미래의 속박밖에 나는 너희를 모든 악재의 재물이 되지 되게 하고 말았구나 물려줄 것이 아무것도 없다니 나는 나의 시민적 동물 목도 물려주지 않으련다 폭정에 사무치는 증오도 자유와 평등을 향한 애절한 헌신도 인민을 향한 절인 사랑도 물려주지 않으련다 최후 진술을 이제 하게 되는데 그러면 너희는 너무나 위험한 삶을 사게 되겠지

너희 폭정의 억압 속에서 살게 될 텐데 그것들을 가져가서 뭐 하겠느냐 나는 너희를 노예로 남겨놓고 떠나는 소유의 자유가 누군가를 노예로 만드는 상황들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너희가 사슬을 더 잘 이겨낼 수 있도록 가르쳐 주어야 하지만 그것마저 나는 할 수가 없구나이렇게 이제 진술을 하고 이제 화형을 당하게 됩니다.

 

근데 바베프는 당시 프랑스 대혁명의 결과물이 구체제를 사망하게 한 증서로서의 영향을 미쳤지만 소수의 사람들한테만 이 권리를 주어졌다고 본다. 그래서 모든 사람의 보편적인 인권을 보장해야 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유를 가진 사람들한테 선거권이 주어졌고 소유권에 대한 강조를 하게 되면서 다른 쌍킬노트라든지. 노동자라든지. 여성이라든지. 이런 사람들은 여기에 보호받지 못해 있다. 권리를 누리지 못했다는 이제 비판들이 있는 거죠. 그래서 소유한 사람들한테 권리가 주어졌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주어지지 못했다는제 평가를 받습니다.

 

바베프 역시 인권 선언만으로는 굶주림을 달릴 수 없다. 분배가 여기에는 이루어져야 된다는 주장을 했던 자 중에 하나 였고 바베프의 인권은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치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되는데 노동자들은 정치권을 그때 부여받지 못했기 때문에 인권을 누구나 보편적으로 누릴 수 없게 됐다고 이제 불평등의 대한 주장을 하게 됐고 그리고 이 불평등한 분배는 예속을 지속하게 만든다고 이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바베프는 막스 이전의 막스였다. 이런 평가를 받는 평등주의자였는데 그라쿠스 바베프는 사회적 평등 실현을 위해서 사유재산제를 부정하고 팡테옹이라는 평등 조직을 이제 만듭니다. 근데 1796년에 이 그것이 해체가 되고 1797년에는 처형을 당하는 상황이 벌어졌는데 아까 재판관을 향해서 최후 변론을 할 때 이런 주장을 한다.

 

철학자들이 보편적 복지 또는 공공의 복지라고 부르는 것을 우리를 기소한 자들은 파괴와 약탈이라고 부른다. 땅은 누구 것도 아니며 열매는 모든 사람의 것이다. 원래 땅과 열매는 자연었고 모든 사람한테 소속되어 있는 거라고 보고 있는 거죠. 더 나아가서 복지라는 것을 우리가 복지라고 부르는 것을 자본가, 소유한 자들은 파괴와 약탈이라고 부르더라 관점에 따라 그런 상황들이 달리 해석되는 그런 부분들을 바베프는 얘기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라틴 아메리카의 어떤 신부님도 그런 얘기를 하셨다고 해요. 자기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눠주게 되면 사람이 사랑을 베푸고 자선을 베푼다고 하지만 그들의 가난함의 원인을 질문하는 순간 그는 빨갱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 이제 신부님이 계신데, 이거와 마찬가지로 바베프도 그런 비난들을 당시 받았다.

 

바베프는 1796년에 자신의 사상에 기반한 원칙들을 구현을 했는데요. 사유 재산에 대한 그것들을 부정하고 동등하게 모든 자연은 인간들이 향유 할 권리를 가진다는 것을 시작으로 이 노동자라든지. 분배에 대한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원칙에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사회라면 부자도 가난한 자도 없애야 된다. 모든 사람이 평등해야 된다는 평등 사상들을 원칙에 쭉 담고 있습니다.

 

2. 산업혁명 시대

어떻게 보면 이 프랑스 대혁명을 통해서 이제 자유주의의 시대가 도래했지만, 자유는 부르주아지 그니까 국가로부터의 자유를 브르주아지들이 주장했던 거였고요.

그 국가로부터의 자유는 사적 소유의 자유 그래서 시장의 자유를 의미하는 측면들이 있었습니다. 근데 바베프라든지. 평등 사상가들은 그런 자유는 소유한 자들만 누릴 수 있고 하지 못한 사람들은 누릴 수가 없다. 그래서 분배를 해야 된다는 주장을 했는데요. 이 분배의 주장이 더욱더 이렇게 이제 주장됐던 시대가 산업혁명의 시대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산업혁명의 시대는 어떤 시대였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산업혁명은 1760년대부터 1840년대까지를 이제 이야기하는 시대로 증기 기관의 발명, 기계의 발명, 기술 과학의 변화들이 산업혁명이다. 기계 발명과 기술의 변화로 일어난 산업 및 사회 경제의 변화를 얘기한다. 그전에는 수공업을 통해서 도제를 통한 어떤 상품을 상 생산했으면 산업혁명은 기계가 중심이 돼서 인간이 기계 몸을 맞추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 분업과 생산

산업혁명의 핵심적인 내용 중에 하나가 분업과 생산입니다. 분업과 경쟁은 끊임없이 대량 생산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아담 스미스 국부론에서 이제 잘 보여주고 있는데요.

아담 스미스가 핀 공장이 가봤더니, 그전에는 분업화 되기 이전에는 10명이 한 20여 개 정도를 핀을 만들었는데 공정이 분업화가 되면서 48000개 정도의 핀을 생산할 수 있게 됐다. 분업이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만들고 굉장히 빠른 속도의 생산물을 만들어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산업혁명은 빠른 속도로 생산 상품들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분업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분업화와 그리고 다른 공장 간의 경쟁으로 인해서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가격도 결정되고 그런 것이 자율적으로 조정된다는 게 자유시장, 완전 시장 경제의 원리입니다.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인간이라는 존재를 이기적인 존재로 보고 이기심이 오히려 공동체의 이타성을 발휘하게 된다는 이기적인 착한 사람이 탄생했다. 근대화의 자본주의의 인간형이 그렇다고 아담 스미스는 보고 있다.

우리가 식탁에서 양질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은 푸주간 주인이나 양조장 주인이나 빵집의 주인들이 그 자신의 물건을 많이 팔아 이득을 얻기 위해서는 양질의 물건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는 거죠. 그래서 이기적인 동기에서 상행위를 했는데 행위가 누군가한테는 굉장히 이익을 발생하게 만드는 거죠. 공동체는 이익이 됐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기적인 착한 사람이 탄생한 게 자본주의다 그동안 이기적인 것은 굉장히 나쁜 것이라고 봤었는데 이기심이 오히려 사회를 부유하게 만든다고 했던 게 이제 국부론의 기본 논리입니다.

 

이러한 자본주의 자본이 중심이 된 사회는 어떤 사회였는가 했을 때 이전에 자본이 중심이 되지 않은 사회 그리고 기술 과학 혁명이 일어난 이후에 사회에 모습은 좀 변화를 했는데 그것을 산업혁명의 변화와 문제점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산업혁명의 변화는 생산의 발전 굉장히 분업화로 생산이 빠른 속도로 증가했고 그리고 혁신과 발명이 성장하고 에드슨이 라든지. 뭐 이런 사람들에 의해서 끊임없이 그리고 뭐 제임스 와트에 의해서 증기기관의 발전을 하고 혁명이 이루어지는 그런 시기였다. 농노들보다는 노동자의 임금들이 상승하는 그런 시기였다.

그리고 이 산업혁명의 물류가 활발해지면서 교통망이 개선되는 그런 시기가 이제 도레했다. 반면, 문제점들은 대공장에서 일하는 많은 아동 노동들이 존재했고 그리고 노동의 조건들이 굉장히 비참했다. 그리고 비위생적인 생활환경 오수 라든지. 이런 것들 환경들을 당시제 규제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활 환경이 비위생적이고 오염된 상황이었다. 그리고 대도시 당시에 많은 노동자들이 이동하게 되면서 농촌 지역에 농노들이 없었던 거죠. 그래서 농사를 짓거나 이런 사람 사람들의 일손이 부족하니까 식량이 부족한 그런 사태까지 이제 이어지게 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 전후 생산양식의 차이

 

그러면 산업 자본주의 변화 중심에는 자본주의라는 그런 체계가 있는데, 자본은 똑같은 돈이 사실은 다른 의미로 적용되는데 과거에 화폐 저한테 만 원이 있습니다. 그런데 만 원은 그냥 놔두면 화폐가 되지만 자본으로 쓰이게 되면은 어떤 투자를 통해서 이윤을 획득할 경우에 이 만 원은 자본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고요. 그래서 만 원이 화폐로 불릴 경우와 자본으로 불릴 경우는 이제 다르죠 교환 가치로서의 화폐의 의미를 담고도 있고 투자를 하게 되면 이혼을 만드는 돈 그것이 자본이라고 이제 볼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자본주의 이전에는 화폐라는 것은 교환의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화폐가 자본화가 되면서 상품에 투자하고 그리고 그것이 이윤을 발생시키는 자본주의가 됐다고 볼 수가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끊임없이 자본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이윤을 창출 해내야지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그런 상황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주의 이전과 이후에 어떤 상황들이 변했는가 했을 때 거대한 전환에 보면, 자본주의에서 상품화되지 말아야 될 것들을 얘기할 때 노동력과 토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그런데 이 인간의 노동력과 토지 자본이 화폐가 모두 사고파는 상품이 된 사회가 이제 자본주의 사회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노동력은 예전에는 땅을 제공하는 농노가 영주의 땅에 부역으로 제공하는 것이 노동력이었고 토지라는 것은 국가나 관료한테 원래는 신한테 소속되어 있고, 이 점유권을 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던 거죠. 그래서 사고파는 상품이 아니었다 그리고 자본이라는 거 역시 생산 장비 또는 귀중품을 의미하는 거였는데 이제는 자본도 사고파는 그런 의미가 됐다라는 거죠. 그래서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상품화시키는 사회다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런 상품화에서는 사실은 노동력 조차도 상품이었기 때문에 더 싼 상품으로 대체될 수 있는 거죠.

그것이 나타났던 첫 번째 그 계기가 1779년에 기계 파괴 운동 러다이트운동이라고 이제 보는데요. 이 그 직물 기구가 이제 기계가 계속 발전하게 되면서 인간의 노동이 많이 필요하지 않게 됐던 거죠. 과거에는 인간이 직물 기계에 조절하는 것을 모두 기술화했어야 되는데 이제 자동화 시스템이 점점 되면서 인간을 대체하는 기계가 들어서게 된 거죠. 그래서 노동자들은 자신의 일자리를 빼앗긴 것은 이 기계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기계를 파괴했던 운동이 있습니다. 그것이 러다이트 운동인데 이 직물 기구 이제 직물 방직 공장에 견습생이 레드 러너라는 노동자가 직물 기계를 파괴했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거기에 기원에서 러다이트 운동이라는 이제 기계 파괴 운동이 이루어진 것을 이제 볼 수가 있습니다. 근데 기계 파괴 운동은 당시 노동자들이 현상으로 봤을 때 나를 대체하는 존재가 누구였는가 했을 때 기계였다는 거죠. 기계를 파괴하면 나는 다시 일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던 상황인 거죠. 이 당시 자본주의의 원리라든지. 이런 것들을 모르는 노동자들은 기계를 파괴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지금 현대에 와서 그러한 모습들이 보이는 게 뭐냐 하면, 우리가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이 들어오는 현상들 우리가 일자리가 없는 것은 그들 때문이야 이렇게 보는 측면들이 있거든요. 근데 원인의 원인을 보지 않으면 현상에 매몰돼서 마치 다른 사람 기계라든지. 인간을 주모하게 되는 그런 특징을 보여주는데 그러한 모습을 보여줬던 것이 기계파괴 운동이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3.보통선거권

자본주의 시스템은 아이러니하게도 대공장이 이제 생기게 되죠. 분업화 시스템이 되면서 컨베어 벨트에 많은 노동자들이 단순한 업무를 빠른 속도로 하게 되면서 다양한 도시에서 다른 지역에서 온 노동자들이 큰 대공장이 모이게 되죠. 대공장에서 모인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일에 대한 그런 불만들을 얘기하고 그러면서 그들이 세력화되는 장소였던 거죠. 그래서 자본주의는 아이러니하게 노동을 착취하기도 했지만, 대공장이라는 그러한 곳에서 많은 노동자의 힘을 키울 수 있는 근본적인 공간이 되기도 했다는 것이 자본주의의 또 역설의 모습 보여주기도 합니다. 거기서 노동자들은 자신들도 선거권을 갖지 못하면 어떤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는 거를 인식하게 되고 보통 선거권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는 거죠.

 

 

이 보통 선거권에 대한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은 사실은 먼저 노동자 계급일 것 같았는데 문헌적으로 올림프 구즈라는 여성이 프랑스 대혁명 이후에 프랑스 인권 선언에 대한 비판적 선언문을 내는데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이라는 걸 내게 됩니다. 근데 이곳에서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은 현실이 아니다. 그리고 여전히 여성들은 가부장제적인 사회 질서라든지. 노예제 식민 통치 개별 차별로 이제 여러 가지 불평등한 상황에 놓여 있다. 그래서 인간의 평등은 이제 지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폭로한 비판적인 선언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근데 그중에서 여성들이 사적 영역에서 굉장히 많은 폭력과 박탈을 경험하고 있고 그리고 인권의 문제조차 이야기할 수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데요. 거기에 특히 이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의 17개조로 그 권리 선언을 구성해서 이제 발표를 하게 됩니다. 여성들이 선거권을 갖지 못하는 것에 대한 시민들의 권리를 여성 시민들의 권리를 승인하고 선포해야 된다고 얘기하고 있는데, 이 올릉도 구즈는 여성들은 그 단두대 연단에 설 권리가 있고 단두대에서만 자신의 권리를 얘기하다가 그 처형을 당한 것이 아니라 연단에 서서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얘기할 권리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이제 단두대에서 이제 처형을 당하게 되는데 사실은 올랜도 구즈의 여성 인권 선언에 대한 이야기가 이 보통 선거권의 이야기거든요.

 

그런 것들이 이제 후에도 이제 이어졌고 특히 남성 노동자들 같은 경우는 차티스트운동이라는 것을 통해서 이제 보통 선거권을 이제 요구하게 되는데요. 차티스트 운동은 이제 헌장 보통 선언 남성이라 보통 선거권을 가져야 된다라고 요구했던 영국에서 나타난 최초의 노동자 운동이라고 이제 할 수가 있는데요. 이 차티스트 운동은 윌리엄 로백과 런던 노동자 연합회에서 이제 1838년에 이 차티스트라는 헌장을 이제 발표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현장에서는 이런 내용을 담고 있어요.

모든 남성이 투표권을 갖는다 그래서 보통 보편적 남성은 참정권을 가질 수 있어야 된다는 걸 주장을 하고 투표는 모두 비밀투표로 해야 되고 5년에 한 번이 아니라 매년 우회 선거를 해야 된다. 그리고 선거군은 동일한 크기여야 한다. 그리고 국회의원은 급여를 받아야 되고 국회의원이 되기 위한 재산의 자격은 폐지되어야 된다는 것을 주장을 합니다’. 이 헌장을 이렇게 주장했던 운동이 차티스트 운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차티즘 운동을 통해서 보통 선거권이라는 그런 권리를 이제 쟁취하게 되는데요.

이 보통 선거권이 이제 확대되는 것은 처음에는 소득을 가지고 있는 자산을 가지고 있는 자본가 중심이었다가 이후에는 18세 이상 남녀 보통선거권 이제 1970년대 영국에선 갖게 되는 거죠. 그리고 차티즘 운동을 통해서 뭐 도시 노동자 소시민 그리고 소작농 농업 광산 노동자까지 비밀투표제를 실시해서 그런 권리를 갖게 되고 이후에 19191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에 이제 남녀가 20일 남자는 21세 이상 여자는 30세 이상일 경우에 이제 선거권을 갖게 되는 그런 이제 선거권이 확대됐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근데 보통 선거권이라는 것이 우리가 보통 그냥 모든 사람이면 어떤 증명이 없어도 선거를 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그런 의미를 이제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차티즘 운동을 통해서 이렇게 선거권이 확대되는 특징들을 가지고 있었고요.

 

4. 노동기본권과 사회권

그다음에 이 노동 기본권과 사회권이 또 확장되는데 이 산업혁명은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요. 어떻게 노동 기본권과 사회권이 확장됐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789년에 굴뚝 청소부라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를에 보면, 이 어린 나이에 아이들이 많은 이제 굴뚝 청소부가 됐다는 것을 이제 보여주고 있는데요.

아주 어렸을 때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가 자기가 말을 하기도 전에 굴뚝 청소부로 이제 이 아이를 도제로 보낸 거죠. 그래서 아이 때부터 굴뚝 청소를 했는데 새로운 타미라는 아이가 이제 굴뚝 청소부로 오면서 그 아이를 달래는 그런 시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시는 당시 어린 아동들의 노동을 비판한 시로 인제 볼 수가 있습니다. 그 당시 얼마큼 아동 노동이 심하게 착취되고 있는지를 이렇게 보면 미성년 아동 노동에 관한 영국 의회 조사 보고서가 이제 1830년대에 발표가 됐는데 보고서의 내용을 잠시 보시면, 공장이 바쁠 때 이 소녀들은 몇 시에 출근하는가? 이렇게 질문을 했더니, 바쁠 때는 6주간인데 새벽 세 시에 나가서 밤 10시에 돌아온다 그러면 열아홉 시간 이제 일을 하게 된다라는 거죠. 휴식 시간 얼마인가 했더니, 아침 식사에 15분 점심에 30분 차 마시는데 15분 정도이다. 그리고 이 장시간 노동으로 지쳐서 사고를 인제 당하는 경우도 있는 거죠. 그래서 손가락을 다치거나 그런 걸로 인해서 이제 치료를 받았는데 당시 사고가 나자마자 임금이 이제 정지되는 경험인 거죠. 근데 산재 보험이 있었더라면 이런 것들이 보호가 됐을 텐데 자본주의 초기에는 그런 보호장치들이 없었던 거죠. 그래서 그런 자본주의가 얼마나 노동을 착취했는지 현상들을 이제 잘 보여준다.

 

이러한 노동의 현실들이 보고서를 통해서 나오게 되면서 1833년에 이제 노동법이 개정 정이 되는데 9세 미만의 아동의 노동을 금지한다. 그리고 고용주는 아동의 연령 인증서를 보유해야 한다. 그리고 세에서 13세 아동은 9시간 이상 노동을 금지한다. 그리고 13세에서 18세 사이의 아동은 열두 시간 이상 노동을 금지한다. 그리고 야간 노동을 금지시키고 그리고 매일 두 시간의 교육 시간을 보장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조항들을 강제하기 위해서 네 명의 공장 검사관들을 임명할 것 뭐 이렇게 인제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그 자본주의의 대공장 안에서 다양한 노동들이 착취되고 있었는데, 아동에 대한 노동 보호들이 이제 이루어지는 그런 법의 개정들이 이루어졌다라고 보여집니다. 그러면 이후에 이 법이 개정된 이후에도 어떻게 됐는지 검사관의 보고서를 한번 살펴보면 1836년에 공장검사관의 보고서를 볼 수가 있는데요. 여기에 보면, 이제 테일러 이버슨 사에 사건이 일어난 거죠. 소년들을 인터뷰를 해봤더니, 이들이 며칠을 일했는가 했더니, 거의 이틀 동안 쉬지 않고 밤낮으로 일을 했다라는 것이 보고서에 담겨져 있고 그리고 많은 소년들한테 이 같은 질문을 했더니, 똑같은 대답이 나왔다는 거죠. 그래서 작업장 시간표를 봤더니, 잔혹하고 이제 참담했다. 그래서 이 회사를 엄격히 처벌 해야 됐다. 그리고 거기에 뭐 위원 중에는 의사도 작업장 관리자도 있고 뭐 이런 것들을 이제 이 공장 검사 보관 보고서에는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시 여전히 법이 집행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동 착취들이 이루어지는 현상들을 이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이후에 끊임없는 노동조합이라든지. 노동자들이 힘을 규합해서 공장법이라든지. 다양한 법률들을 통해서 노동의 조건을 개선해 왔는데요. 1833년에 이제 아동 노동에 대해 한 그런 금지 뭐 법령이 개정되었고 1844년 여성 노동에 대한 야간 노동 금지라든지. 노동 시간을 이제 제한하는 것들이 이제 적용이 되었고 1847년에 여성과 18세 미만 아동은 10시간 이상 노동을 금지하는 그래서 끊임없이 열아홉 시간에서 열두 시간 열두 시간에서 10시간으로 이렇게 줄어드는 그런 현상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1867년에는 이것을 단순히 여성과 아동에게만 접목하지 않고 모든 산업 현장의 적용하고 그리고 이전의 규칙들은 5인 이상 노동자를 사용하는 구 인원에도 이제 적용한다고 이제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871년 노동조합법이 통과되면서 노동자들의 단결이라든지. 뭐 그런 것들이 이제 보장되는 그런 그 법이 이제 도입이 됐습니다. 그리고 1901년에 최저 연령 노동 최저 연령을 12세 상향 조정하는 공장법들의 변화들이 이렇게 이제 이어져 왔다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제 노동 산업혁명 이후에 노동자들이 이제 보통 선거권을 갖고 정치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권력이 되었기 때문에 이런 공장법들도 변화해 왔고 또 한편으로는 빈곤에 대한 대응들 사회권의 변화들도 있었거든요. 근데 최초의 빈곤 법이라고 볼 수 있는 게 엘리자베스 푸어로라고 할 수 있는데, 1601년에 이제 엘리자베스 여왕이 빈곤법을 이제 제정을 하게 되는데 당시 인제 1590년대 도시의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많은 농노들이 도시로부터 도시로 와서 굶어 죽거나 얼어 죽는 일들이 많아진 거죠. 시골에서는 인클로저 운동으로 인제 땅으로부터 쫓겨났고 그리고 생존을 위해서 도시로 왔는데 여전히 일자리가 없어서 이런 상황들이 벌어진 측면들이 있었고,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농노 땅으로부터 떠났기 때문에 식량 문제들이 일어나게 된 거죠. 그래서 식양을 키우기보다는 양을 키우고 양털이 더 비쌌기 때문에 그리고 농노들이 없으니까. 이제 농사의 인력들이 부족하고 이런 것이 다. 영향을 미쳐서 식량 부족 문제가 이루어졌고 폭동이 발생을 하게 된 거죠. 그래서 이러한 것을 국가가 푸어로로 이제 빈곤법을 제정해서 이제 노 빈곤한 사람들을 관리하는 그런 이제 상황들이 이제 발생을 하게 됐는데요. 1601년의 구빈법 빈곤법은 이제 노동 능력이 없는 사람과 노동 능력이 있는 사람을 구분해서 이제 관리했다. 그래서 노동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구비원으로 이제 가서 보호를 받았다. 노동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작업장을 설립해서 이들을 이제 노동 강제 노역을 시킨 거죠. 그리고 당시 이제 많은 불황인들이 도시로 와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니까 구걸 행위를 했는데 이것을 이제 사회문제로 인식하는 경향이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엘리자베스의 이제 빈곤법, 구빈법이라고도 하는데 이 당시에 빈곤이라는 것은 죄악 게을러 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봤고 이 게으른 사람들을 어떻게 교화시킬 것인가에서 일할 수 있는 빈곤층들은 강제 노역을 통해서 교화를 시킨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고, 일할 수 없는 빈곤층은 자신을 보살필 수 없는 노인이나 그 장애인 뭐 아픈 사람 여성, 임신한 여성 이런 분들을 여기에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구분되어서 이제 관리됐던 게 빈곤법이다. 그런데 이 1601년에 만들어진 법령은 영국시 영국의 끊임 300여 년간 지속이 됐었는데 이 법이 여전히 강력하지 못하다는 비판을 또 받게 된 게 1834년 신구분법으로 이제 바뀌게 됩니다. 그래서 왕립 위원회를 소집해서 이제 빈민들을 어떻게 보면 지금 뭐 원의 구호도 하고, 뭐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원외 구호는 없애고 이들의 열등 처우의 원칙을 통해서 다루지 않으면 끊임없이 빈곤한 들을 양산할 수밖에 없다고 봤던 게 신구빈법의제 관점이었거든요. 그래서 1834년에 이제 새로운 신구민법이 이제 탄생을 하고 이 법을 통해서 이제 가난한 사람들이 당시 어떻게 보여졌는가 했을 때 이 신구민법은 과거의 법보다 훨씬 더 엄격하고 이 처벌의 기능들이 되게 강했던 거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구빈원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래서 임시보호소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잠시 지내려고 하는데 임시 보호소 에 들어가려면 경찰에 인가를 받아야 됐어요. 그래서 여기에 이 루즈 필즈경이 그린 임시 수용 입 접소 허가를 기다리는 지원자들이라는 이 삽화가 있는데, 이 그림은 당시 이제 구빈원에 들어가게 되면 가족들은 서 해체가 되고 거기 안에서 굉장히 강제 노역을 당하기 때문에 이 빈곤한 사람들은 구빈원에 들어가지 않고 원외 구호가 이제 중단됐기 때문에 잠시 임시보호소래도 이제 귀가할 수 있도록 허가를 받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는 루크 필즈경이 처음에 런던에 와서 이 광경을 목격한 거죠. 그래서 이것을 신문 기사에 이제 담게 되고 그래서 당시 얼마큼 신구민법이 가난한 사람들한테 처벌의 기능을 했는지를 보여주는 그림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영화 역시도 당시 신구민법을 잘 반영하고 있는데요.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라는 문학 작품은 당시 신구민법 비판하기 위한 그러한 문학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시면, 구빈법의 모습을 굉장히 잘 보여주고 있고요. 그시 작 직장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아동들이 이제 안에서 노동 착취를 당하고 있고 굉장히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근데 당시 이제 구빈원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아동한테 이제 위원회에서 이제 질문을 하게 되는데요. 아이가 고아라는 증명을 해야 되고 더 나아가서 그 선한 존재인지 그래서 종교 생활을 열심히 하는지 그리고 여기에서 강제 노역을 통해서 노동하는 노동자로 만들어주겠다는 것이 이렇게 인터뷰 내용에 담겨져 있거든요. 당시 빈곤한 사람들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생존권 보장

그런데 이러한 측면에서 인제 사회주의자들은 끊임없이 생존권에 대한 보장들을 주장을 하게 되는데요. 마르크스와 앵게스는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모든 인간의 역사의 첫 번째 전제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존재다 그래서 가장 먼저 먼저 고려해야 할 일은 사람들이 물질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지 그리고 결과 이 사람들이 어떤 자연과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 뭐 이런 것들을 이야기해야 된다. 그래서 생존권 보장에 대한 첫 번째 전제를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는데, 당시 노동이라든지. 가난한 사람들은 생존권이 보장되어 있지 못한 것을 이제 반증적으로 보여주는 주장이 아닌가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시민 사회와 정치 사회를 구분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프랑스 혁명을 통해서 이룩한 시민 시민 사회는 자본주의의 하위 사회이다. 그래서 시민 사회는 사적 소유의 자유를 추구하는 부르조아 권리 만이 이제 보장되는 자본주의 인권만이 보장된다고 이제 비판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시민사회에서는 인간을 생산 활동의 주체로 자본주의 생산 관계 속에 사랑하는 개인으로만 바라본다 그래서 이러한 이기적인 개인은 타인을 이제 생산의 도구로 이제 바라보면서 사적 이익을 추구한다는 거죠. 그리고 호모 이코노미쿠스라고 이제 볼 수가 있는데, 여기에 인간형을 근데 이 인간형은 비정치적이고 비사회적인 개인을 얘기한다. 그래서 비사회적인 자연적 인간의 권리는 자연권으로서의 인권이다. 사회적으로 조절해야지 인권이 평등한 인권이 되는데 자본주의 하에 인권이 그런 이제 양육 방식에 의한 그런 모습을 비춰주고 있다라는 거죠. 그래서 자본주의 인권은 사적 소유의 자유를 추구하는 부르주아지의 권리이지 모든 사람의 권리는 아니다. 그러면서 인권의 이중성을 이제 비판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정치 사회를 통해서 국민의 권리가 보장돼야 된다.

모든 사람의 평등한 권리가 이제 보장되어 되는데 정치 사회 속에서는 인간은 정치적으로 해방된 국가에서 시민은 모두 평등하고 법 앞에 같은 권리를 지니고 자유로운 환경이 보장된 그래서 호모 이코노미쿠스를 전제한 정치 사회로 가야 된다. 이 정치 사회의 국가는 정치를 통해서 인간들이 공유하는 거죠. 다양한 분배 문제라든지. 이런 것들을 그래서 이 사적인 개인적인 문제로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공적 체제 안에서 그런 것들을 분배하고 조절하는 그런 역할들 들이 이 안에 들어와야 된다. 그래서 정치 사회를 마르크스는 주장한다. 그래서 인간은 정치적으로 조직된 사회 구성원으로서 인간이고 정치력을 공유하는 인간이고 인류의 구성원으로서의 인간이다. 그래서 지상에서 자본주의 관계 속에서는 서로가 서로의 경쟁자이자 적대자이며 더 많은 이익을 차지하기 위해 분열하지만 천상에서 삶에서는 공동체적인 존재이라고 이제 마르크스는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정치 사회가 될 때 모든 시민들의 평등성이라든지. 권리를 이제 보호받을 수 있다는 것을 주장합니다.

 

 

이러한 그런 주장이 잘 반영되었던 것들 중에 하나가 파리코민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1871년에 파리 코미는 세계 최초 노동자 계급 중심의 민중 운동이 이루어진 실제 노동자들이 권력을 잡고 70일간 파리에서 민중 권력의 시간들을 이제 보냈던 시간이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때 1871419일 카 파리 코민 선언에는 이런 이제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데요. 모든 프랑스인이 인간으로서 시민으로서 노동자로서 자신의 소질과 노동을 완전히 행사할 수 있게 보장해야 된다. 그리고 거기에 사회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사회권의 권리 등 사후조치가 아니라 교육 생산 교환 금융을 짐작하고 보호하는 데 적합한 제도의 설립처럼 체제가 근본 본적으로 보장해야 할 권리다. 어떤 사고에 의해서 사후조치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교육이라든지. 기본적인 권리로서 이 사회복지 권리가 사전에 먼저 보장되어야 된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집회라는 것은 민중의 일 선전의 자유 집회의 자유들이 보장되어야 된다 라고 인제 주장했던 게 파리코뮌였다고 볼 수 있는데, 이런 것을 통해서 이제 사회권 과거의 구비 빈곤법이라든지. 구빈 법은 이 빈곤의 대상을 처벌하는 방식이었다면 이 파리코민에서 주장했던 사회권은 시민의 권리로서 이것이 근본적으로 보장돼야 할 인권이라고 주장한 측면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산업 자본주의 시대 산업혁명으로 인한 이 자본주의 시대는 이 자본주의가 근본적으로 노동을 착취하고 생산하는 과정에서 이게 노동의 착취가 이루어지고 그런 착취가 사실은 끊임없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게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이라는 거죠. 그래서 이 자본주의 시스템을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서 종식키시키지 않는 한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 주장을 했던 게 사회주의자들이거든요. 근데 이러한 사회주의자들의 주장은 사실은 인권이라든지. 사회복지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자본주의나 제국주의의 정치인들은 사회주의로 노동자들이 넘어갈 것을 굉장히 두려워했던 거죠.

 

그래서 이 사회주의 사상의 어떤 기본적인 복지에 대한 그런 부분 들을 자신들의 제도라든지. 이런 것들로 받아들여서 제도화시킨 측면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산업 혁명 시대의 인권은 어떻게 보면 사회주의적인 인권의 영향을 받은 인권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회주의적 인권을 한번 살펴보면 소셜이라는 것이 상호부조의 의미 가지고 있는데, 동료 구성원들이 개인에 대해 평소에는 물론이고 곤경에 처했을 때도 공동체가 지켜주는 그런 상호부조가 소셜 라이즈라는 고대 로마의 용어였다. 그리고 공산주의 코미니즘이라는 그런 공산주의는 사회주의의 의미를 인제 갖고 있는 거죠.

그리고 이 사회주의와 사민주의는 또 공산주의와 또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 마르크 크스의 혁명을 통해서 가려면 이제 뭐 사회주의가 되고 나중에 이제 공산주의가 된다. 사회주의에선 능력에 따라라고 필요에 따라 가져간다라고 보고 공산주의에서는 이제 그러한 것들이 모두 사람의 모두의 공유 하기 때문에 그런 거 자체가 이제 필요 없게 되는 그런 이제 물질적 토대가 이루어지고 그런 시대를 공산주의 체계라고 하는데 이러한 주장들이 사실은 당시 노동의 열악함 속에서 사회주의를 주장하게 된 측면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사회주의 관점과 이런 관점들이 인권에는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1918년에 노동 피착취 인민의 권리 선언들이 이루어졌었는데 선언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져 있어요. 토지의 사적 소유를 폐지해야 된다. 중세 시대에는 토지라는 것은 소유가 아니었고 점유였다. 이건 원래 자연의 것이고. 만민의 것이기 때문에 사적으로 소유할 수 없다. 그래서 사적 소유를 폐지 해야한다. 그리고 생산 운송 수단의 국유화 그리고 은행의 국유화를 해야 된다. 그래서 기관 산업이라든지. 그런 중요한 그 산업의 국유화를 주장을 했고 보편적 노동의 의무 누구나 노동의 의무를 수행해야 된다는 것을 이제 선언하게 됩니다 자유주의 자본주의의 법적 평등은 여전히 이제 사회적 불평등을 현실을 가린 허위적 평등이다.

그래서 이 평등을 질적인 평등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생산수단을 사회화하지 않으면 그 되지 않는다라고 본 게 이제 사회주의다 자본주의는 생산 수단을 사적 소유한 사회를 자본주의라고 한다면, 사회주의는 생산 수단을 사회화시킨 것을 사회주의라고 이제 얘기를 하거든요. 그래서 생산수단이 국유화되고 이런 것들을 중요하게 보는 거죠. 그래서 인민의 권리 선언에는 그런 내용들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노동 피착취 인민 권리 선언의 또 다른 내용은 권리는 사회 전체 구조 그리고 사회 속의 인간과 자연이 맺는 관계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 이 생산관계 총체적 문제와 맞물려 있다. 그래서 인권은 자연법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 역사적 규정된 한 사회 전체적 구조에서만 존재한다. 그래서 유물론적 관점이 담겨져 있는 거죠. 그래서 구조가 권리를 정한다. 사회의 구조가 권리에 영향을 미친다 자연권은 마치 천부적으로 갖고 있는 거 같은데, 힘 관계에 따라 권리는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여기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권리라는 것은 사회 구성원이 공동으로 만들어 가는 것으로 생산 수단을 사회화된 경우는 노동의 주체가 동시에 소유의 주체다 어떤 A공장과 B 공장이 있는데, A공장은 자본가가 운영하는 공장이죠. 생산수단을 자본가가 소유하고 있다.

기 때문에 노동이 원료와 함께 빵을 만들게 되면 빵에 이윤이 창출이 되면 그 이유는 자본가한테 가는 거죠. 그리고 노동자의 임금으로 가는 거죠. 반면에 만약에 B 공장이 모든 생산 수 단을 사회화시킨 제빵 공장 안에서 노동자들이 주인이면서 생산을 할 경우에는 이득 이익이 생기게 되면 이득을 모두 노동자한테 간다는 원리를 갖고 있는 거죠. 그래서 이 생산 수단을 사회화시킨다면 모두가 동시에 주체 노동의 주체이자 소유의 주체가 된다라고 이제 주장을 하고 이 주체는 집단과 공동체에 속한 존재이기 때문에 시민 사이의 경제적 관계 정치적 관계는 따로 분리되지 않는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정치적으로 평등하지만 경제적로는 불평등하다 근데 생산 수산을 사회하면 사회화시키면 경제와 정치적 평등이 이루어진다고 봤던 게 사회주의적 관점이고 그것이 노동 피착취 인민의 권리 선언에 이제 담겨져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근데 이러한 선언은 사회주의 철학은 인권의 이제 도 사회 경제적 권리에 대한 초석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